여행기

[스크랩] 서울 성곽길 4구간(인왕산코스)1

윤정자 2012. 9. 20. 10:13

속 시끄러운 마음을 달래고자 혼자 길을 나선다.

집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너무 멀어져 돌아오는 길이 멀어질 것 같고

친구와 나서자니 지금 내 마음이 누구를 배려할 여지가 없다.

너무 한적한 곳은 사람을 더욱 쓸쓸하게 할 것 같고

그래서 적당히 복잡하고 사람이 복잘거릴 서울로 향한다. 사람 속에 부딪기며 마음을 달래보자.

 

벌써 2008년이던가 숭례문 화재로 여전히 복원중인 숭례문이 내마음과 같을까.

숭례문 밖에 있던 남지터 표시석에 너머로 보이는 숭례문이 복원을 위해 보호막에 쳐져 있다. 

 

좀더 걸어보자. 하늘은 파란 물이 떨어질 정도로 푸르다.

마침 덕수궁앞에 수문장 교대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한다. 

 

수문장 교대식이 끝나고

시청쪽으로 눈을 두니 시청 뒤로 특이한 모양의 건물이 하나 생겼다.

우주 정류장 같기도 하고 저건 뭐하는 건물인고?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걸어보자.

돌담길엔 연인들보다 커피잔을 들고 다니는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좀더 길을 오르면 아펜젤러 목사님의 정동교회에 이른다.

오늘도 아펜젤러 목사님의 눈이 되어 교회를 바라다본다.

 

정동극장으로 향하는 길에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중명전이 눈에 들어온다.

중명전은 처음에는 고종때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다. 이후 덕수궁에 화재가 나서 고종은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이후 1905년 11월 18일 새벽, 일제는 군대를 동원하여 중명전을 침범하고 고종과 대신들을 협박하여 을사늑약을 강제로맺기에 이른다. 1907년 아들 순종에게 왕위를 넘겨줄 때까지 3년 반 동안 중명전에서 주로 국사를 처리하였다.

1915년 사교클럽으로 쓰이다 화재로 전소, 재건 되었다가

 현재 사적 제 124호 덕수궁에 편입되어 현재 복원완료되어 들어갈 볼 수 있다.

 

정동극장, 이화여고를 지나서 난타전용극장을 지나 큰 길을 건너

강북성심병원 언덕으로 접어들면 돈의문터(서대문)에 이른다.

 

이제부터 길을 잘 들어야 인왕산으로 제대로 들어설텐데

지나는 이에게 길을 물으니 모른단다. "서울성곽길은 여기 없는데요.... 종로쪽으로 가야돼요."

도움이 안될 때는 내 감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역시 죽지 않았어. 촉을 믿고 따라가니 홍난파 선생 옛집을 만난다.

초록 담쟁이가 예쁜 빨간 벽돌집......

 

 

양지바른 집안에 빨려 들듯이 들어서니

선생님의 노래인 <봉선화> 가 피아노로 연주되고 있다.

마음에 울컥한 것이 올라오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1903년 독일인 선교사의 집이었던 이곳은 난파선생이 1935년부터 돌아가시기 까지 이곳에서 6년간 사셨던 집이다.

이후 프랑스 대사관저로도 사용된 적이 있어 비교적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난파선생님의 외손녀분과 그 남편분이 나오셔서 손님을 맞고 있다.

초로의 외손녀가 연주하시는 난파선생님의 봉선화, 고향의 봄 등등은 더욱 아름답다.

외손녀에게서 듣는 난파 할아버지 얘기와 그 당시 동네 이야기는

심란한 내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다. 

지금도 그 피아노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난파 할아버지의 집을 지키며 할아버지 곡을 연주해주시는 외손녀의 모습이 아름다움을 넘어 경외감이 든다

 

다음길을 재촉한다.

안내지도에 나와있는대로 삼거리수퍼를 지나니 낡았지만 범상치 않은 규모의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달쿠샤(엘버트 테일러 가옥)가 나온다.

달쿠샤 이게 뭔 소리지? 힌디어로 '행복한 마음'이란다.

건물의 규모가 꽤 크다. 지금은 개인 소유인지 연립주택처럼 여러 집이 살고 있다.

 

딜쿠샤의 측면으로 정면은 훨씬 크다.

 

광산개발업자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테일러는 UPA(지금의 UPI) 한국특파원으로 부인 메리 테일러와 이곳 딜쿠샤에서 살았다.

1919년 서울에 거주하며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찍은 엘버트 테일러의 많은 사진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사진들을 그의 아들로부터 기증받아 2010년에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이를 인연으로 그 아들은 서울명예시민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달쿠샤는 너무 낡아서 그의 한국과 한국민을 사랑했던 마음이 무색하다.

이사진은 엘버트 테일러가 1919년 3월 3일에 찍은 고종의 장례행렬이다.

 

달쿠샤 바로 앞에는 권율장군의 생가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다시 삼거리 수퍼쪽으로 나와서 옥경이 수퍼가 나올 때까지 언덕길을 오른다.

이름은 약간 시골스러운데 사실은 모든 걸 바코드로 계산하는 편의점이다.

약간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 레몬네이드 하나와 보름달 빵을 산다.

시장기가 돌고 배고픈 걸 느끼는 걸 보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나보다.

 

이제 인왕산성벽을 따라 올라가야한다.

성곽을 왼편에 끼고 fm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고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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