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스크랩] 서울성곽길1구간(북악산구간):북악산

윤정자 2012. 9. 20. 10:13

지난번 인왕산구간 성공에 힘입어 오늘은 1구간 북악산 코스로 간다.

그 어렵다는 창의문부터 가기로 한다.

8시10분쯤 집을 나서서 부평에서 용산 직행을 타고 용산에서 다시 종로3가로, 4호선환승 경복궁역 하차,

다시 녹색버스 7212를 타고 자하문에서 하차: 도착하니 10시10분.

북악산등산이 힘든 것이 아니라 서울까지 가는 길이 이리 힘들어서야......

이미 해설사는 떠난 상황이고 혼자 올라간다.

 

창의문안내소에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출입증을 받아야한다.(청와대 뒷산으로 가는 것이라서)

서둘러 시작점인 창의문을 찍고 올라간다

 

앞으로 오를 길이다.

 

초입은 시멘트길이지만 곧 나무데크로 되어있다.

 

고개를 돌려 건너산을 보니 지난번에 힘들여 올랐던 인왕산 정상이 보인다.

지난번에 그리 힘들더니 다시 바라보니 지난번의 내가 대견스럽다.

 

다시한번 정상을 향해 오른다.

최대난코스:경사 최고.

그러나 이곳만 오르면 북악마루에 이른다. 오르기를 20분 정도 힘들여 오르면

이후에는 계속 걷기좋은 내리막길이다. 희망을 가져도 좋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나는 1 21사태 소나무, 일명 김신조 소나무.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간첩이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군과 경찰과의 대치끝에 29명 사살, 1명 도주, 김신조 1명 생포하였다. 이후 향토예비군이 생기게 되었고 김신조씨는 이후 전향하여 현재 목사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당시 총탄을 맞은 소나무, 이름하여 1.21사태 소나무 또는 김신조 소나무라고 부른다.

 

셀카를 찍느라고 애쓰는 나를 보고 보초를 서던 군인아저씨가 찍어주었다

  목에 걸고 있는 것은 출입증

 

앞으로 이렇게 성벽을 끼고 계속 내리막이다.

 

성벽이 다 같아 보여도 건축시대별로 다르다.

건축초기인 태조5년 (1396년)에는 큰메주만한 크기의 돌을 다듬어 썼고

세종4년(1422년)엔 장방형의 돌을 기본으로 사이사이에 잔돌을 섞어 쌓고

숙종30년(1704년)에는 2자x2자의 정사각형 돌을 규격화하여 튼튼하게 쌓았다.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성곽의 동서남북 대문 가운데 북대문인 숙정문이다.

숙정문은 도성의 북쪽에 있는 문이라 보통때는 닫혀 있었다.

그러나 북쪽이 물을 상징하여 나라에 가뭄이 들었을 때는 북대문 숙정문을 열어서 비가 오기를 기원하였다.  

 

 

참 눈에 띄는 위치표지판. 내 모습이 비치는 것이 재미있어 한 장 찍다.

 

현위치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제 창의문에서 받은 출입증을 반납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산길을 내려오면 와룡공원을 만난다.

처음 창의문에서 시작하는 길이 가파라서 초반에 힘이 들긴 하지만 내려오는 길이 완만하여

코스 선택이 좋았음을 다시한번 느낀다.

서울과학고등학교 뒤를 오른쪽으로 하고 계속 성곽을 내려오면 이제 시내 성북동길로 들어선다.

성곽은 이곳에서 사실상 잠시 끊어지고 나는 성북동 심우장과 길상사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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