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스크랩] 중국여행 및 어학연수(뀌즈따오(橘子島)~부싱지에(步行街))

윤정자 2013. 12. 2. 19:08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서호루'라는 식당:한번에 5,0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식사 중에 소수민족의 춤 공연과 산수화 경매가 벌어진다.

 

서호루의 외관

 

 

뀌주다오에 있는 마오쩌둥의 32살때의 모습을 한 반신상 : 마오쩌둥의 반신상 중 가장 크다.

마오쩌둥이 창사에 1911년부터 1925년까지 14년 동안 머물며 학문에 힘썼던 것을 기려 반신상을 세웠다.

이곳은 강 가운데 있는 섬으로 옛날에는 귤나무가 많아서 뀌주다오(橘子島)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귤나무와 장미 등등으로 꾸며놓은 창사시민들의 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밤 늦도록 사람들이 강가에 나와 바람을 쐬고

여름엔 매주 토요일 오후 8시면 이곳에서 20여분간 불꽃놀이를 하고 강가에 사람들이 나와 구경을 한다.

 

 

귤나무에 아직 익지 않은 푸른 귤이 많이 달려 있다

 

창사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지, 남목청 6호 : 청조말기의 정원식 주택으로 예전에 하씨 가문의 개인주택이었다.

이곳 남목청은 항일시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사에 정착하였을 때 조선혁명당의 본부였으며 한국광복전선 3당통일회의를 했던 곳이고 김구선생이 저격을 당해 부상을 입은 곳이기도 하다.

1937년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과 가족 100여명은 중국정부의 도움하에 난징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자주독립적인 조국을 위하여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김구선생님의 흉상과 이곳 안내원 : 후난대학교의 학생으로 한족 여학생인데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열심히 안내해 주었다.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김구선생에 대한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앞뜰에 무궁화가 심겨져 있는데 우리 국화 무궁화와는 좀 달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김구 선생이 저격으로 부상을 당했을 때는 장개석이 3번이나 방문을 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창사시의 시급문화재로 지정되고 보호되고 있으며

2009년에 특별비용을 지원하여 청사를 지원하고 전시실을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창사에는 이곳 남목청 6호 뿐만 아니라

부상 당한 김구 선생님이 치료받은 병원과

치료후 요양하며 지내던 악록산이 있다.

 

부씽지에 : 우리나라의 명동과 같은 거리 : 서울 어느 곳에 못지 않는 쇼핑가와 먹을 거리가 즐비한 곳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 맥도날드에서 냉커피와 맥플러리를 사먹고 더위를 식힌 후  쇼핑을 하였다.

많은 가게 중에 내가 평소에 입고 싶던 면으로 된 점퍼 스커트가 있어 사 입었다.

가격은 중국에서는 다소 비싼 369원(우리 돈으로 x170원 하면 62,730원).

 

부씽지에에 나온 아이들이 흔쾌히 모델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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